민법은커녕 랑시에르도, 데리다도 보기 싫었다. 외부와 만나는 거의 모든 일(그것이 활자가 되었든, 영화가 되었든, 인터넷이 되었든, 대면하는 일이든)이 쥐어짜내야 될 만큼 힘들었다. 생각만 해도 눈이 뻑뻑했다. 무말랭이를 전보다 맛있게 무치기 위한 레시피 탐색조차 못했다. 내가 이런 상태일 수 있다는 데 놀라, 죄책감에 몸을 재게 놀렸다. 냉장고를 들어내 다 닦고, 빨래를 몇 번이나 하고, 수건들을 삶아 널고, 걸레질을 다섯 번은 했다.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물조차 끓이지 않아서 결국 편의점 가서 사왔지만(이틀 동안 너무 힘이 들어 놓아 버렸던 몇 가지 일들보다 입에 집어넣기 위해 밥하는 것이 후순위임은 명백하다), 애들 생식은 녹번의 냉이 것까지 넉넉히 만들었다. 그래도 자두와 빵은 약간 먹었으니, 전보다는 많이 자신을 챙기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. 특정하다고 할 수 있을 경험의 말들이 몸을 떠나지 않고 웅숭그리고 있다. 왜 나는 소통에 집착하는 것이냐며 자학하고 싶지는 않다. 사소한 얘기일 수 있는 것을 꼬깃꼬깃 부여잡고 있는 것은 '피해자가 아니면서' '그런 이야기'를 꺼내는 사람을 가까이 본 적 없는 '경험'이다. 오이를 채썰어 비빔국수 해 먹을 만큼 조금 기운을 차렸다. 문턱없는 밥집이 생각나 오이로 싹싹, 양념을 닦아 먹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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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슨 일인지.. 그래서 그동안 학교에서 안 보인거야? 내가 도시락 싸줄테니-맛은 장담할 수 없지만, 배는 부를 수 있어- 언제든 말만 해.